김명선
金明宣1864 ~ 1937. 7.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추을미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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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64년에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추을미면(秋乙美面) 이천리(梨川里)에서 태어났다. 1872년에는 마을에 있는 이천재(梨川齋)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07년에는 노덕경(盧德卿)과 함께 자신이 장로로 있던 이천교회(梨川敎會)의 한 칸을 빌려 신우학교(信友學校)를 세웠다. 1908년부터 1911년까지는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崇實學校) 사범과를 다녔다. 대동군은 조선시대에 평양성(平壤城)의 성하군(城下郡)이었다. 일제 시기에도 대동군청은 평양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동군에서도 3월 초부터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1일 다음 날인 3월 2일에 대보면(大寶面)에서 제일 먼저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학생인 이응칠(李應七)이 대평외리(大平外里)에 있는 기독교계 학교인 취명학교(就明學校)의 교사와 의논하여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다음 날인 3일에도 400여 명이, 4일에는 500여 명이 대보면 면사무소로 몰려가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대보면을 시작으로 대동군면에서도 잇따른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3일에 신우학교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노인묵(盧仁默)으로부터 평양과 이웃 마을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니, 이 마을에서도 만세를 부르자는 권유를 받았다. 한복순(韓復淳)이 주동하여 신우학교 운동장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노인묵은 연설하였고, 김재조(金在兆)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3월 9일 만세 시위 참여 사실을 신문받고 방면되었다. 그러나 3월 20일에 다시 검사국에 검거되어 수개월 간 구류 후에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7월 10일 평양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다. 상고하면서 이유서에 “조국을 위해 독립을 바라는 것은 항상 인민의 소원이다. 지금 우리 한국 민족이 만세를 부른 것은 조국의 고념(顧念)에서 나왔다. 어찌 큰 허물이 되는가! 본국이 독립할 호기임을 느끼고 인류로서 어느 누구가 애국사상을 갖지 않았겠는가”라고 항변하였다. 1919년 9월 20일 고등법원 형사부가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형 집행 만기로 출옥 후 신우학교 운영에 전념하였다. 1926년에는 유지들의 기부로 교사를 신축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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