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진
金萬鎭1898. 4. 27 ~ 1989. 8.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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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8년 4월 27일에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시족면(柴足面) 호남리(湖南里)에서 태어났다. 평남 서남부에 위치한 대동군은 평양시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평양성(平壤城)의 성하군(城下郡)이었다. 일제 시기에도 대동군청은 평양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상 평양과 다름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는 즉각적으로 대동군에 전파되었다. 대동군 안에는 3월 2일 자로 대동군수와 대동경찰서장이 연명한 ‘조선은 이미 독립되었다’라는 내용의 문서가 돌아다녔다고 한다. 대동군에서는 3월 2일의 대보면(大寶面)을 시작으로 잇달아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3일에는 고평면(古平面)에서 면장인 조익준(趙翼俊)이 직접 주도하는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4일에는 율리면(栗里面) 무진리(戊辰里)에 있는 기독교계 학교 교사 윤기안(尹基安)의 주동으로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율리면 장천리(將泉里)에서도 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남형제산면(南兄弟山面) 고산리(孤山里) 주민들도 동네와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대동강면(大同江面) 두단리(斗團里)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대동강면 선교리(船橋里)·고평면 남리(南里)에 있는 만경대(萬景臺)·고평면 평천리(平川里)·대동강면 오야리(梧野里)·장수원(長水院) 등에서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장수원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주재소 헌병에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27일 평양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다. 상고 이유서를 통해 ‘한일병합 이래 한국 독립이 최대 소원이었던 바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 만세를 불렀을 뿐이니 누가 감히 한민족이 독립되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가’라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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