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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운

金東雲

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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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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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寧越)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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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상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874년경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하동면(下東面) 미사리(未似里)에서 출생하였다. 김원일(金元一)로 불리기도 했다. 평소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농민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 강원도 삼척(三陟) 출신의 김상태(金相台)가 의병을 규합하여 속리산 주변에서 항일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김상태가 이끄는 의병부대와 함께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도창의대장에 추대된 이강년은 군대를 재편성하여 김상태를 중군, 백남규를 우선봉, 하한서(河漢瑞)를 좌선봉으로 삼았다. 김상태 휘하의 중군에 소속되어 영월, 죽령 등 소백산을 중심으로 일본군의 약점을 공격하는 유격전을 펼쳤다. 1908년 이강년이 사망한 뒤 김상태가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1911년 체포될 때까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4월 20일 김상태 의병부대 60여 명과 함께 경상북도 순흥군(順興郡) 봉양면(鳳陽面) 남대동(南大洞)에 가서 정보를 입수한 뒤, 영춘군(永春郡) 동면(東面) 의풍리(儀豊里)에서 거주하던 조만실(趙萬實)이 일제의 밀정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처단하였다. 1910년 4월 20일 경 순흥군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에 가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김해수(金海秀)가 일제의 밀정 노릇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처가 일본인과 부정한 짓을 했다고 하여 처단하고 그곳 주민들로부터는 군자금 500냥을 징수하였다. 이어서 같은 동네에 거주하던 황진사의 가택에 들어가 엽전 400냥을 모금하였다. 1910년 4월 30일경 의병 황모(黃某)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의병의 체면을 훼손하였다고 하여 그를 처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추격해 오던 일본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2년 3월 2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죄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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