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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진

金斗鎭

1887. 10. 21 ~ 194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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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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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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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현 안동시) 예안면(禮安面) 천전리(川前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참여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안동 최초의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는 면장과 면서기들의 주도하에 예안면에서 일어났다. 예안면에 사는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이동봉(李東鳳), 이용호(李用鎬) 등은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가 서울의 만세 시위를 목도하였다. 그들이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예안면의 시위 준비가 시작되었다. 3월 11일 밤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의 주도로 면서기들이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여 만세 시위를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신상면은 3월 17일에 거사할 것을 제안하고 군중 동원을 준비하는 동시에 독립선언서는 면사무소 등사판을 가져다가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등사하고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예안면의 유생들도 조수인(趙修仁)을 중심으로 3월 17일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예안교회(禮安敎會)에서도 3월 17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7일 오후 3시 30분 수십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 일본인들이 다이쇼 일왕의 즉위를 기념하여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넘어뜨리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 소리와 함께 시장 주변에 대기하던 시위대가 일제히 시장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오후 6시경에 1,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경찰관 주재소 앞에서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주재소를 둘러싸고 돌과 기왓장을 던졌다. 오후 7시경에는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구금자를 탈환하고자 경찰과 군인에게 저항하고 유리창을 부수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31일에 대구복심법원 형사 제1부에서 항소를 기각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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