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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백

姜汝伯

미상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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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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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옹진(瓮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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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옹진군 마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마산면(馬山面) 구계리(龜溪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종교는 천도교였다. 옹진군 마산면에서는 3월 3일 온정리 시장 장날에 만세 시위를 전개하려고 김선수(金善洙)·최희승(崔熙昇) 등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찍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주동자들이 체포되고, 이후 경찰 측의 감시가 심하여 이날의 시위는 제대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곧바로 다음 시위가 계획되었다. 이번에는 천도교인들이 나섰다. 이들은 3월 8일 온정리 시장 장날에 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정하고 천도교구장 정한영(鄭漢泳)의 지휘 아래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때 교정면(交井面) 대표 조동룡(趙東龍) 등과 함께 만세 운동 준비에 참여하였다. 3월 8일 고천잡화점(古川雜貨店) 앞 네거리에서 약 100명의 군중에게 “조선은 독립하여야 하니 일동은 만세를 고창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며 앞장서서 만세를 외쳤다. 시위가 전개되는 가운데 헌병이 출동하여 군중을 해산하고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후 보안법 위반으로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4월 24일 평양복심법원이 기각하자 다시 상고하였다. 5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재판 과정에서 “4000여 년 되는 조선민족으로서 조선이 독립될 것을 바라고 만세를 부른 것이 무슨 죄이냐”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며 강경하게 항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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