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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한

姜承翰

186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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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승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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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명천(明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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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관련 사건

  • · 명천군 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863년경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 산성동(山城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초순 같은 동네 이남규(李南珪)의 집으로 이학복(李鶴馥)·이서규(李瑞珪)·이현구(李賢求) 등을 불러 모아 같은 면의 우동동(雩東洞)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권유하였다. 모인 이들이 찬동하자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기’라고 쓴 깃발을 제작하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14일 오후 1시경 명남동(明南洞) 명동학교(明東學校) 뒤편 개울가에서 3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오후 2시경에는 산성동에 이르렀다. 이에 입석동(立石洞) 경찰관주재소 경찰들과 서면 면장이 나서서 군중을 회유하고 압박하여 오후 3시경 해산하였다. 일제 측은 곧바로 명천 주둔군 보병 4명을 출동시켜 마을 경계를 강화하였다. 다음날인 4월 15일 군경이 들이닥쳐 전날 시위 주동자들을 색출하였다. 이때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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