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열
姜大烈1881. 1. 17 ~ 1953. 11.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영덕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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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1년 1월 17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신광면(神光面) 냉수동(冷水洞, 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냉수리)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북장로파 기독교이며, 1910년대 후반 영덕면(盈德面) 오포동(烏浦洞, 현 강구면 오포리)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영덕군에서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였다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준비되었다. 3월 17일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기독교회 조사(助事)인 강우근(姜佑根)이 집으로 찾아와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각 지역에서 전개되는 만세 시위 소식을 들으며 동참할 뜻을 가지고 있던 중에 강우근이 제안하므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 같은 교회 교인인 김순근(金順根)과 송기주(宋基柱)에게 만세 시위를 권유하며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젊은 청년들을 동원해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일로 정한 3월 18일 강우근 등 교인들과 함께 영덕면 남석동시장(南石洞市場)으로 갔다. 이날은 장날이라 시장은 장을 보러 온 수백 명의 사람으로 붐볐다. 교인들과 함께 시장 한복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연호하자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며 독립 만세를 절규하였다. 출동한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므로 시위는 곧 진정되었다. 이때 강우근·김순근 등과 함께 연행되었다.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여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년 형을 확정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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