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봉
桂基奉1895. 8. 1 ~ 1964. 2.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강화군 부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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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1895년 8월 1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삼산면(三山面) 석모리(席毛里,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계준향(桂埈享)·계기춘(桂基春)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기독교인이었다.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황도문(黃道文)은 독립선언서와 「국민회보」를 휴대하고 고향 강화군으로 돌아와서 유봉진(劉鳳鎭) 등 지역 유지를 만나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강화에서 금은세공업을 하고 있던 유봉진은 기독교 신자들과 함께 강화군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유봉진은 목사 이진형(李鎭亨) 등과 강화군 내의 주요 교회를 순회하면서 기독교인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3월 18일 부내면 장날을 거사 일로 정하고 「강화인민에게」와 「독립가」 등을 만들어 인쇄하였다. 인쇄물은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통해 강화군 내 각지에 배포되었다. 3월 18일 오후 2시경 강화군 부내면 읍내 시장에서는 군중이 먼저 나서서 ‘조선 독립’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 군중이 증가하여 1만 명 이상이 되었다. 이때 군중과 함께 군청, 객사, 공자묘로 행진하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강화군청으로 몰려가서 군수 이봉종(李鳳鍾)을 위협하여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강화경찰서로 가서 검거된 유희철(劉熙哲) 등 세 명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순사를 구타하였다. 위급한 상황이 계속되자 경찰은 구금자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을 달성한 뒤 다시 시장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밤 11시경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19일 오전 8시,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용산에서 군인이 파견되었다. 이때 시위 참가자 63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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