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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선

康華善

1904. 3. 27 ~ 1979.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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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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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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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수피아여학교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전남 광주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4년 3월 27일 평안남도 평양(平壤)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명은 강정순(康貞順)이다. 아버지는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남도 여수군 남면(南面) 우학리교회, 제주도 모슬포교회 등 7곳의 교회를 개척한 강병담(康秉談) 목사이다. 아버지를 따라 이사하여 1907년부터 전남 여수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 전남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광주의 만세 시위는 원래 3월 8일 큰 장날을 기하여 전개할 계획이었으나 준비와 연락 관계로 3월 10일로 연기되었다. 그 사이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는 박애순(朴愛順, 1896~1969) 교사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 준비가 시작되었다. 상급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몰래 고종의 인산 일에 입었던 치마를 뜯어 태극기를 만들고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는 1,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 쪽에서는 양림교회 교인들과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군중과 함께 광주천을 따라 내려왔다. 광주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들었다. 시위 군중이 모이자 군중에게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주었으며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저녁 무렵에 이르기까지 광주 시내의 주요 거리를 누비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찰서로 몰려가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우체국 앞에 이르렀을 때 무장한 기마헌병대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현장에서 함께 체포된 사람이 100여 명이 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에는 전남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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