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
金暘壎1895. 11. 21 ~ 1943. 4.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희천청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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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5년 11월 21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장동면(長洞面) 관동(館洞)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1919년 고향 희천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전개하려고 1920년 5월 김숙훈(金淑壎)·최윤서(崔允瑞)·김석철(金錫喆)·김지훈(金持壎) 등과 함께 희천청년회(熙川靑年會)를 조직하였다. 희천청년회는 표면적으로는 지식 계발과 회원 친목을 표방하였으나, 비밀리에 회원들에게 독립사상을 선전하고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와 연계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던 단체이다. 연통제에 의한 연통부(聯通府) 조직은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에 해당된다. 국내 전 지역에 설치되지는 못하였으나, 당시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단체 가운데서도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면서 연통부의 역할을 수행한 단체가 적지 않았다. 희천청년회 역시 이러한 임시정부의 연통부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숙훈을 회장을 한 희천청년회에서 회계 및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 밖에 청년회 간부로는 지육부장(智育部長) 최윤서, 평의원(平議員) 김석철, 고문 김지훈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4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였다. 희천청년회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삼락학교(三樂學校)에 모여 ‘우리가 독립운동을 함은 청년의 책임이며, 우리는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라는 취지의 연설회를 개최하고 민족적인 창가(唱歌)를 부르는 등의 활동을 통해 회원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20년 11월경 동료들과 함께 신의주경찰서에 붙잡혔다. 이때 간부진이 대부분 검거됨으로써 결국 희천청년회는 1921년 1월 회장 김순봉(金舜鳳)이 사퇴하고 해산되었다. 1921년 4월 21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1921년 6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22년 6월 22일 출옥하였다. 1943년 4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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