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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金世鎭

미상 ~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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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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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출생일 및 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20년 3월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에 위치한 천마산(天摩山)에서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천마산대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평안북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성립 초기 최시흥(崔時興)을 사령관으로 한 천마산대의 경리에 선임되었다. 천마산대는 국내에 근거지를 구축했지만 강력한 항일 무장 투쟁을 목표로 한 단체였다. 따라서 소속 대원 모두가 굳건한 체력과 담력을 소유한 인물들로, 끊임없이 한국 북부 지역에 설치된 침략기관을 공격해 일제에 큰 피해를 안겼다. 소속대원이 많을 때는 200명에 이르던 시기도 있었다. 경리는 단체의 수입과 지출을 담당하는 직책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총을 들고 무장활동에 참가해 군자금 모집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성립된 천마산대였지만, 실제 이 단체는 서간도(西間島) 콴뎬현(寬甸縣)에 본부를 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별동대였다. 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이 이끈 광복군총영 또한 1920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군으로 성립된 광복군의 특수부대였다. 광복군은 본부에 참리부(參理部)·사령부·군영(軍營)을 편제해 설치하고, 전투를 전담할 총영을 설치했던 것이다. 오직 항일무장 활동만을 전담한 광복군총영은 국내에 2개의 별동대를 두었는데, 천마산대와 김영화(金永和)를 사령관을 해 벽동군(碧潼郡)에 근거지를 가진 벽파별영(碧波別營)이었다. 광복군총영 소속 무장대였기에 천마산대 대원들은 국내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수시로 대원 일부가 콴뎬현 총영 본부의 대원들과 교체되기도 하고, 필요할 경우 서간도로 호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1922년 초에는 천마산을 떠나 콴뎬현으로 가서 활동하였다. 광복군 본부 및 주변의 한인 사회를 경계하고, 독립군의 기밀을 캐다 일제에 팔아먹는 밀정을 적발해 처단하는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그 같은 활동을 하던 중 콴뎬현까지 침투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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