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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순

金世淳

1895 ~ 19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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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세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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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곽산(郭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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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1922년 당시 27세였으므로 1895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은 평안북도 곽산군(郭山郡)이다. 가족 관계와 성장 과정은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압록강을 넘어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단원이 되었다. 대한독립단은 1910년 경술국치 전후 서간도로 망명한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 등 자치단체를 통합해 1919년 4월 류허현(柳河縣)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목표로 조직한 단체였다.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 부총재 백삼규(白三奎), 사한장 김기한(金起漢), 총단장 조맹선(趙孟善) 등이 선임된 중앙조직을 구성하고, 만주와 국내 여러 지역에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무기와 탄약 등을 충원해 확보하고, 국내에서 도만(渡滿)한 청년들을 계속 독립군 요원으로 가입시켜 무장 활동력을 증강하였다. 이 같은 대한독립단의 노선(路線)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압록강을 넘은 자신의 의지와 부합되어 도만 즉시 단원이 되었다. 단원이 된 후 지안현(輯安縣)에 설치된 지단(支團)에 소속되었다. 지안현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국의 초산(楚山)·만포(滿浦)와 마주한 지역으로 국내로 진입하기 쉬워 민첩하고 활동력이 왕성한 요원들이 주로 배치되었다. 지안에서 동료 대원들과 유격대를 결성해 수차례 국내로 진공하여 군자금 모집, 일제 침략 기관 습격 등의 활동을 벌였다. 민첩한 활동으로 연이어 성공적인 유격전을 펼쳤으나 1920년 말경, 평북 강계군(江界郡) 고산진(高山鎭)에 진입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 3개월 수감되었다가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었다. 투옥 중에도 반일 감정을 드러내 간수(看守)와 자주 대립하였다. 또한 이미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칠 것을 결심한 몸이니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임을 간수와 같은 방 투옥자들에게 호언하였다. 이같이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간수와 마찰이 일어나 독방에 갇히고 말았다. 홀로 독방에 갇혀 있던 중, 부친의 기일인 1922년 8월 25일 만기 출옥 5개월을 남기고 허리띠로 목을 매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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