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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와

金晩窩

1898. 2. 1 ~ 1967.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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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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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무산(茂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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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8년 2월 1일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 영북면(永北面) 서호리(西湖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김순학(金舜鶴)이다. 1919년 북간도(北間島)에 소재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여 통신 연락 업무를 수행하였다. 철혈광복단은 민족운동자들이 설립한 중학교의 학생들이 1914년 설립한 항일 단체다. 설립 후 이 단체의 단원들은 러시아 연해주 민족운동 계열과 연계해 활동하며 1910년대 북간도 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특히 임국정(林國禎)·최이붕(崔以鵬, 이명 崔鳳卨·崔溪立) 등 6명의 단원은 1920년 1월 4일 회령에서 북간도로 오는 길목인 동량(東良) 상리사(上里社)의 동량어구(東良於口)에서 조선은행 회령지점의 현금 우송 마차를 습격해 15만 원을 탈취해 독립군 무기 구입 자금으로 활용한 거사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 같은 철혈광복단에 입단해 통신연락 업무를 수행하였다. 단체의 조직범위가 북간도에서 연해주까지였으므로 상호 연결하고 소통하는 업무가 상당히 중요했으리라 판단된다. 1922년에는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에 입단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과 무기 구입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은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 후 북만주 지역에 산재한 독립군단들이 1922년 8월 4일 통합하여 성립한 독립군단이다. 3·1운동 후 만주지역에 성립된 많은 독립군단 소속 독립군 유격대의 국내 진입전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이르는 대병력을 서북간도 지역에 침입시켰다. 일본군 대병력이 침입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독립군들은 병력을 이동시켜 북만주의 미산(密山)을 거쳐 러시아의 자유시(自由市, 러시아명 : 알렉시예프스크)까지 갔다. 독립군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희망하며 그곳까지 갔으나, 연해주에서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항일독립군단들인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과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이 만주에서 넘어 온 독립군들과 통합해 그 지휘권을 서로 가지려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겨 자유시참변이라는 대 수난을 만들고 말았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다시 만주로 온 독립군들은 닝안현(寧安縣)·무단장(牧丹江)·둥징청(東京城)·둥닝현(東寧縣) 등 북만주 지역에 각 군단별로 산재해 근거지를 구축하였다. 근거지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이들 군단은 이동하고 수난을 겪는 과정에서 그 규모나 장비가 예전 같지 못하였다. 따라서 각 군단의 대표자들은 효율적인 독립운동 수행을 위해 협의를 거쳐 통합 독립군단인 대한독립군단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1926년에는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군단에 참여한 단체 중 가장 중추적 독립군단은 김좌진(金佐鎭)이 이끈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였다. 그런데 1924년 초, 북로군정서가 대한독립군단에서 분리되어 나가자 이 통합군단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가 얼마 후에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1924년 대한독립군단을 나와 북만주를 떠나 지린(吉林)으로 왔다가 고려혁명당에 가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혁명당은 1926년 4월 5일 지린에서 남만주(南滿洲)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正義府) 소속 인물들, 천도교(天道敎)계 인물들, 형평사(衡平社)의 대표들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민족운동자들이 연합해 성립시킨 단체였다. 단체적 통합이라기보다는 이념과 노선을 뛰어넘어 결합한 독립운동체였던 것이다. 위원장은 양기탁(梁起鐸), 책임비서는 이동구(李東求)였고, 정이형(鄭伊衡)·오동진(吳東振)·현정경(玄正卿)·최동희(崔東羲, 이명 최소수(崔素水)) 등 15명이 위원으로 선임되어 단체를 이끌었다. 고려혁명군 결사단 단원이 된 후, 1929년 10월 김보형(金寶炯)·손성우(孫聖于)·최기호(崔基浩) 등 6명의 동지와 군자금 모집을 위해 부호들이 많이 거주하는 하얼빈으로 갔다. 그리고 외국사도가(外國四道街)에 거주하는 부호 이규은(李圭殷)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대도시 하얼빈에는 중국대륙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제의 무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결국 활동 중 일본 경찰대에 붙잡혔다. 이후 국내로 송치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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