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두일

金斗一

1875. 11. 2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두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무산(茂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밀정 이남율(李南律) 처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75년 11월 29일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 동하면(東下面) 풍산동(豊山洞)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김치만(金致萬)이다. 도만(渡滿)하여 1920년경 북간도(北間島) 허룽현(和龍縣) 명신사(明信社) 이도구(二道溝) 득미동(得美洞)에 거주하였다.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독립군단(獨立軍團)인 야단(野團)의 단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야단은 1919년 3·1운동 후 소래(笑來) 김중건(金中建)의 주도 아래 청림교도(靑林敎徒)들이 합력해 북만주 중동선(中東線)일대에 성립시킨 독립군단이었다. 성립 초부터 대규모 한인 사회가 형성된 북간도 지역에 활발히 교세를 확장하고 야단의 세력도 넓혀갔다. 따라서 성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 2만 명에 이르는 청림교 신도를 확보했고, 이들 대부분은 야단의 단원이 되었다. 북간도에 세력이 집중되자 본부를 옌지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로 옮겨 적극적인 항일 무장활동을 수행하였다. 이 같은 야단의 단원이 되어 경호원의 직책에 임명되었다. 경호원의 임무는 본부나 지단의 진영을 경계하는 업무였지만, 야단의 단원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한인 마을을 경계하는 경우도 있었다. 후자의 임무를 하는 경호원이었다. 1920년 5월 28일, 두만강 건너의 무산읍(茂山邑)에서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는 이남율(李南律)이란 자가 특별한 일도 없이 허룽현 이도구에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이도구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두만강을 넘어온 자로 파악하고 같은 단원인 장봉학(張鳳鶴)과 마정덕(馬正德)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셋이 힘을 합해 이남율을 체포하여 신분과 도강 목적을 확인한 후 처단하였다.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4년 1월 25일 취하하였다. 수감 중 감형되어 12년 6개월의 옥고를 겪고 1935년 11월 23일 출옥하였다.이 사실이 일제의 영사관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국내로 이송되어 1923년 9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사형을, 동지 두 사람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