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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극

金斗極

1882. 5. 27 ~ 194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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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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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박천(博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박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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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5월 27일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가산면(嘉山面) 근단동(芹端洞)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7월 재만(在滿) 독립군단(獨立軍團)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파견원 박승연(朴勝衍)과 김기한(金起漢)을 만나 국내 지단원(支團員)이 되었다. 이들과 힘을 합쳐 평북 가산지단을 조직하고 부지단장으로 선임되었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西間島)인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浦) 시거우(西溝) 다화셰(大花斜)에서 의병 출신 인사들을 주도하여 조직한 독립군 단체이다. 경술국치를 전후해 망명한 의병 출신 인사들이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 등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다 3·1운동의 전개로 전 민족의 항전 의식이 발현되자 본격적인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독립군단인 대한독립단을 성립시킨 것이었다. 최고 책임자인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를 비롯하여 백삼규(白三奎)·이웅해(李雄海)·김평식(金平植)·전덕원(全德元)·김기한 등은 대부분 의병장 또는 의진(義陣) 간부 출신으로서, 대한독립단 조직에 크게 기여하고 이후 조직을 이끌어간 인사들이다. 이들 중 의암(義菴)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의 부하로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의 김기한은 국내에 많은 지인을 가진 인물이었다. 대한독립단 성립 이후 사한장(司翰長)이란 직책에 임명되어 1919년 11월부터 국내에 들어와 지단 설립에 노력하였다. 그는 짧은 기간에 황해도 해주(海州)·신천(信川)·연백(延白)과 평남 숙천(肅川)·평북 태천(泰川)·함경남도 이원(利原) 등에 지단을 설립하였다. 1920년 7월 상순 김기한은 부하 박승연을 대동하고 박천군으로 왔다. 이때 김기한을 만나 지단 설립의 필요성을 들었다. 이어 김기한은 뒷일을 맡기고 국내 지단 총괄기관인 중앙총기관을 설립하려고 서울로 떠났다. 이후 박승연과 함께 가산면의 오봉희(吳鳳熙)·장남정(張南正)·김두섭(金斗燮), 가남면(嘉南面)의 김흥서(金興瑞), 가동면(嘉東面)의 한봉강(韓鳳岡)·김필수(金弼洙), 청룡면(靑龍面)의 오동훈(吳東勳) 등을 만나 의견을 모은 뒤, 우선 제일 참여자가 많은 가산면에 지단을 설립하였다. 이때 지단원들의 합의로 부지단장에 선임되었고, 지단장은 오봉희가 맡았다. 가산면과 가남면과 가동면은 가산지단에 포함시키고, 거리상 떨어져 함께 활동하기 쉽지 않은 청룡면은 분리해 오동훈을 지단장에 임명한 후 청룡지단을 확대해가도록 하였다. 이같이 조직을 확정한 후 박승연이 대한독립단 본부에서 가지고 온 「대한독립단내지분치기관임시통칙(大韓獨立團內地分置機關臨時通則)」이라는 제목의 지단 활동요강과 독립군 자금 모집을 위한 경고장 등을 박천·태천 등 평북 지역에 배포하며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지단이 설립된 그해 10월, 태천군 장림면(長林面)에서 활동을 벌이다 일제의 검거망에 걸려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평양복심법원에서 지단장 오봉희와 함께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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