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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金世東

1870. 5. 14 ~ 194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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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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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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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묘적반대사건
  • · 군자금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870년 5월 14일 의성 김씨 동성 마을인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에서 아버지 김병락(金柄洛)과 어머니 진성 이씨의 2남 3녀 중 장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성칙(聖則), 호는 심대(心臺)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묘지화장장 매장 및 화장취체규칙」이 1914년 9월에 이르러 경북 전역에서 시행되자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일제가 공포한 이 규칙의 주요 골자는 매장은 공동묘지에서만 가능하고, 이전의 분묘에도 일본의 연호를 붙여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맞서 ‘경술국치’ 전에 죽은 사람에게 일본 연호를 기재하여 신고하는 것은 부당하며, 이는 선조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1915년 8월 20일(음 7. 10) 문중 회의를 열었다. 3일 뒤 ‘묘적반대사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만들어 조선총독부와 의성 김씨 문중에 보냈다. 이 때문에 붙잡혀 1915년 10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에도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렸다. 2월 초 정관식(鄭寬植)으로부터 함께 파리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자는 권유를 받자, 뜻을 같이하기로 하고 우선 자금 모집에 나섰다. 3월 15일 안동군 서후면 이송천동의 부호 김봉경(金鳳慶)을 찾아가 4,000원의 자금을 요구한 끝에 1,000원을 마련하여 서울의 정관식에게 750원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늙은 아버지의 체포 소식과 함께 자신도 수배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원도 춘천군 서하면 안보리 김우천(金祐天)의 집에 몸을 숨겼으나, 결국 일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1915년의 일로 가중처벌이 내려져, 1919년 11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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