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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심

康濟深

미상 ~ 19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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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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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창성(昌成)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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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북도 창성군(昌成郡) 출신이다. 정확한 생년월일이나 본적 등은 확인할 수 없다. 강제심(康濟心)이라고도 표기되었다. 1919년 4월 1일 평북 창성의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창성군 읍내 서문(西門) 밖에서 기독교 및 천도교 계통에서 주도한 만세 시위운동에서 2,2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내 연통제(聯通制) 조직과 관련을 맺고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4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독립단원의 군자금 모금 활동에 협력하였다는 혐의로 창성군 묘동(廟洞) 주재 경찰에 붙잡혀서, 현장에서 곧바로 살해되었다. 당시 강제억(康濟億)·김하철(金河哲)도 같은 사건으로 피살되었다. 이 시기 압록강 연안 일대에서는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조그마한 혐의만 있어도 즉각 처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밀고에 의한 것이다. 일찍이 독립단원이 오정포(吳正浦)·강채기(姜蔡基)라는 인물에게 군자금을 강요한 일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가 이 독립단원을 데리고 온 것이라고 일제 경찰에 밀고하였다. 이 사실을 들은 일제 경찰은 한밤중에 호출하여 재판없이 곧바로 사살하여서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이 노부모와 처자만 남겨두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여 당시 주위에서 매우 애통해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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