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세
金承世1892 ~ 1920. 11. 2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2년 출생했다. 출생지와 가족관계는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1920년 북간도(北間島) 훈춘현(琿春縣) 상의사(尙義社) 회룡봉(回龍峯)에 거주하며 한인민족학교인 삼도포자(三道泡子)학교의 교사로 근무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 많은 민족운동가들은 서북간도 지역으로 망명했다. 국외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해 장기적 항전을 통해 국권을 되찾고자함이었다. 이들 망명 민족운동가들은 국내에서 동포들을 계속 이주하도록 했다. 그리고 척박한 서북간도 토지를 중국인들로부터 매수하거나 대여해 이주한인들로 하여금 개간토록하며 한인사회를 형성해 나갔다. 민족운동가들이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장차 민족의 운명을 질 2세들에 대한 교육이었다. 확고한 민족정신이 함양된 상태에서 개인의 자질에 알맞는 수준 높은 학문적 소양을 갖게 된다면 한민족의 실력이 고양되어 결국에는 조국을 광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한인들이 이주해 온 북간도 지역에는 한인마을이 만들어지는 곳곳에 민족학교들이 설립되었다. 훈춘현의 경우도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기독동명학교(基督東明學校)·광동학교(光東學校)·풍의학교(豊義學校) 등 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해 약 10년간 수십 개의 한인 민족학교가 개교했다. 삼도포자학교도 이 같은 민족학교 중의 하나였다. 이곳에서 장차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후학들을 교육하였던 것이다. 망명 민족운동가들이 민족의 후진을 양성하며 독립운동기지 구축을 위해 이같이 노력하고 있을 때,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국내에서 시작된 이 독립운동을 북간도의 한인들도 이어 받아 3월 13일 룽징(龍井)의 서전대야(瑞甸大野)에서 독립축하회를 개최하고,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이날 시위에서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측의 공격으로 큰 희생을 내기도 했지만, 민족운동가들과 한인들은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민족운동가들은 지금까지 준비한 역량을 모두 모아 침략자 일제와 대결할 독립군단(獨立軍團)을 성립시켰다.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국민회군(國民會軍) 등 많은 독립군단들이 북간도 곳곳에서 조직되었던 것이다. 이들 독립군단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독립군은 북간도 곳곳의 민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성립된 여러 독립군단은 성립 즉시 유격대를 구성해 국내로 진입시켰다. 국내 진입 유격대원들은 일제의 기관을 파괴하고 일본 군경(軍警) 및 친일파들을 공격해 처단했다. 첩보원들을 통해 독립군의 동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제는 크게 당황했다. 급기야 1920년 6월 4일에는 유격전을 마치고 귀대하는 독립군을 두만강 넘어 북간도까지 추격했다가 삼둔자(三屯子) 지역에서 역공 당해 대패하고 말았다. 이 삼둔자전투를 앙갚음하기 위해 같은 달 7일에는 300명이 넘는 대병력으로 북간도 왕청현(汪淸縣)까지 침입해 들어갔으나 독립군연합부대의 작전에 말려 1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봉오동대첩(鳳梧洞大捷)을 당하고 말았다. 독립군의 국내진입전은 끊기지 않고, 큰 전투에서의 패배가 연이어지자 일제는 1920년 8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입안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2만여 명에 이르는 대병력을 서북간도 독립군기지를 향해 침입시켰다. 한국에 주둔한 일제의 조선군 제19·20사단과 여순(旅順) 주둔의 관동군(關東軍), 시베리아파견군, 북만주(北滿洲)파견군 등으로 구성된 일본군 병력이었다. 이 침략군들은 이듬해 4월까지 6개월여 동안 서북간도 독립군기지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이란 대만행을 저질렀다. 1920년 11월 2일 오전 7시 일본군 스기마사(衫政父) 대위가 50명의 일본군과 10명의 경찰들로 구성된 1대를 이끌고 두만강 근접의 훈춘 회룡봉을 향해 침입했다. 이들 침략군들은 도착즉시 마을을 샅샅이 수색하여 한인남성들을 찾아내 직업을 묻고 반일(反日)의식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를 심문했다. 결국 민족학교의 교사임이 밝혀져 함께 끌려 온 한규량(韓奎良)·김용연(金龍淵) 등 6명과 체포되었다. 일본군들은 체포한 7명을 끌고 삼도포자학교로 가 순식간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이어 회룡봉을 나와 다른 한인마을을 옮겨 다니며 똑같은 만행을 자행했다. 그리고 저녁 7시경, 흑정자(黑頂子) 금당촌(金塘村)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계속 끌려 다니던 7명의 일행은 사방이 어슴푸레 어두워지고 있는데다 일본군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동시에 숲속으로 뛰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결국 일본군경이 쏘아대는 총을 맞고 모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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