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金順浩1877. 10. 2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77년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관서면(舘西面) 어궁동(御宮洞)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김시열(金時烈)이다. 1920년부터 재만(在滿) 독립군단(獨立軍團)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천마별영(天摩別營, 또는 철마별영(鐵馬別營))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서간도(西間島) 지역에 성립된 여러 독립군단은 더 효율적인 항일 무장 활동 수행을 위해 통합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평안북도독판부·대한독립단·대한청년단연합회 등의 대표들이 합의를 이루어 1920년 2월 서간도 콴뎬현에서 광복군을 성립시키고, 참리부(參理部)·사령부·군영(軍營) 등을 편성하였다. 그리고 오직 군사적 목적을 수행할 특수부대인 광복군총영을 별도로 조직하였다. 광복군총영 산하에는 천마별영과 벽파(碧波)별영 등이 있었다. 국내에 주둔하며 상시 유격전을 수행하는 것이 별영의 임무였는데, 최시흥(崔時興)이 지휘한 천마별영(일명 천마산대(天摩山隊))은 평북 삭주(朔州)와 의주(義州) 사이에 위치한 천마산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항일 무장 활동을 펼쳤다. 천마별영은 국내에 근거지를 두었기에 간부 및 대원 일부가 콴뎬현의 본부에서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현지에서 가담한 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찾던 중 천마별영의 대원이 되어 1920년 6월 말부터 의주에서 활동을 펼쳤다. 구성군 관서면에 있는 대원 최지관(崔志寬)의 집에서 머무르며 향후 작전을 협의한 이정서(李貞瑞) 등 9명의 천마별영 대원들과 함께 7월 2일 의주군으로 이동하였다. 다음날 의주군 고관면(古舘面) 대산(大山)시장에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는 홍응경(洪應境)을 찾아가 처단하였다. 이어 신속히 구성군으로 돌아온 대원들은 신시동(新市洞)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공격을 눈치챈 순사들이 재빨리 주재소를 뛰쳐나와 인파 속에 도피하였다. 추격전을 벌이던 중에 결국 육류를 파는 장운봉(張雲鳳)과 여성 이응선(李應善) 등 두 명의 한국인만 희생시키고 말았다. 같은 해 (음)8월에는 대원 최지관·최운봉(崔運鳳)·손봉선(孫鳳善)·임명규(林明奎) 등과 함께 의주군 월화면(月華面)으로 이동하여 같은 달 7일 밤 월하면 화하동(化下洞) 거주 부호 이경석(李景碩)을 방문하여 군자금 110원과 향후 제공하겠다는 50원에 대한 지불계약서를 받아냈다. 이후 며칠을 의주군 내 부호들의 집을 돌며 37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고 8,600여 원에 해당하는 지불계약서를 받아냈다. 이러한 활동 중 잠시 외부 일을 보러 나갔던 단원 최운봉이 월하면주재소 순사들에게 체포되어 순사들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동지들의 거처를 발설하였다. 이에 8월 23일경 체포되어 1921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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