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준
金承俊1866 ~ 1925. 6.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독립군 후원(숙식제공)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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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2) 출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1925년 활동 당시 60세였으므로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시중면(時中面) 내동리(內洞里)에 거주하였다. 강계는 평북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국경 인근에 있어 무장 투쟁이 빈번하게 벌어졌던 지역이다. 1920년대 초반 만주 지역의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국내로 진공하여 각 지에서 무장 투쟁을 벌이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들은 항상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이동할 때 음식과 숙소를 확보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더욱이 각지에는 밀정이 잠복하여 주민들의 동태를 감시하였다. 1925년 6월 평북 강계에서 무장 독립단 7명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무장단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정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러 한국인 순사 한 명과 일본인 순사 여러 명을 무장단으로 변장시켜 파견하였다. 순사들은 자신들을 독립단이라고 속이고 이전에 무장 독립단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지원한 사실을 조사하고 돌아갔다. 변장한 순사를 본 아들 김원태(金元泰)는 그들이 무장단이 아니라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임을 알아챘고 부친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1920년대 초반 국경 부근의 무장단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직접 활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음식이나 숙소를 제공했던 조력자들의 협조 덕분이었다. 따라서 일제 경찰의 감시망은 치밀했고 독립군과 교섭하거나 지원하는 경우 혹독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이에 순사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악형을 받고 가족까지 어려움에 처할 것을 예상하고 자결,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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