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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함

姜基涵

1896. 7. 2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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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기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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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서(江西)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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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6년 7월 27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함종면(咸從面) 송동리(松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함종면에서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 개업의(開業醫) 강기팔(姜基汃), 잡화상 김용수(金龍洙), 범오리(範五里)의 이능훈(李能勳)·오영선(吳永善) 등이 주도하여 그곳 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500여 명의 군중을 소집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시위는 인근의 발산(鉢山)·승영(升盈)·광덕(廣德)·계명(桂明) 등 각 동리에서도 확산되어 참가자가 2,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는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7월 29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1월 29일 풀려났다. 1919년 7월경 함종면 송동리 김승현(金昇鉉)의 집에서 김승현을 비롯해 윤석용(尹錫用)·이재찬(李載讚)·곽대민(郭大珉)·곽원상(郭元相) 등 17명이 대한독립청년단(일명 함종대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출옥 후에 단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청년단 조직 시기에 대해서 『매일신보(每日申報)』 1921년 2월 15일 자에는 1919년 12월이라고 하였으나, 이후 기사들은 모두 7월에 결성되었다고 하고 있다. ‘대한독립함종청년단’이라고도 불리던 대한독립청년단은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국내 조직 ‘대한독립청년단’의 함종지역 조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국 상하이에서는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국내에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단장은 김승현, 부단장은 윤석용이 맡았다. 단용인장(團用印章)과 단원증서(團員證書)를 발행하고 수십 명의 단원을 모집하여 1인당 단비(團費) 1원씩을 거뒀다. 그리고 육혈포를 사고 군자금 영수증 등의 서류를 인쇄하고 인장을 제작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활동하다가 1921년 2월경 김승현·윤석용·곽대민 등과 함께 강서경찰서(江西警察署)에 붙잡혔다. 그해 3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구형무소 김천분감에서 옥고를 겪고 1922년 3월 31일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1927년에 이른바 ‘소화 2년(昭和二年) 은사(恩赦)’에 의해 사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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