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술로
金述魯1898. 10. 8 ~ 1946. 7.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흠치교(吽哆敎)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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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2) 1898년 10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동(川前洞)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강일순(姜一淳)이 1900년대 초에 창시한 흠치교(吽哆敎)의 교도가 되어, 1920년대 초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흠치교는 강일순의 호를 따서 증산교(甑山敎)라고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신도들이 외는 주문인 태을주(太乙呪)가 ‘훔치 훔치’로 시작하는 데서 훔치교(吽哆敎) 또는 흠치교(吽哆敎)라고 많이 불렸다. 한말 동학(東學) 사상과 1894년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에 기원을 둔 흠치교는 일제강점기에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져갔으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런데 1909년 강일순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 고씨(高氏)와 제자 차경석(車京石)·김형렬(金亨烈) 등이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증산교를 모태로 선도교(仙道敎), 보천교(普天敎), 태을교(太乙敎), 불교진흥회(佛敎振興會, 彌勒佛敎로 개칭), 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 제화교(濟化敎, 三德敎로 개칭) 등 각지에 여러 교파가 생겨났다. 이 중 차경석을 교주(敎主)로 한 보천교 계통의 조직에서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교주 차경석 아래에 60방주(方主)라는 고문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또 각각 30원-15원-10원-5원의 치성비(致誠費)를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도록 하였다. 당시 교도들 사이에서 이 독립운동 자금은 고폐(告幣)라는 은어(隱語)로 불리었다. 교도들은 1924년이 되면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鷄龍山)에 도읍하고 황제에 취임할 것인데, 이때를 기하여 국외의 독립운동 단체와 호응하여 일제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개시하여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즉, 1924년까지 일본은 중국 또는 미국과 개전(開戰)하게 될 것이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국외 독립운동 기관과 연락하여 1919년 만세 운동 때처럼 일제히 일어나면 독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망 아래 신도들을 조직하고 운동 자금의 모집에 노력하였다. 1920년 (음)7월경 천전동 뒷산에서 김주노(金宙魯) 등과 함께 입도제(入道祭)를 지내면서 일심동체(一心同體)를 맹세하고 흠치교 교도가 되었다. 김응로(金應魯)가 이끄는 8인조에 가입하여 국권 회복을 결의하고 이듬해까지 신도(信徒)들의 모집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4월경 여러 신도와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23일 기소되어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이듬해인 1922년 7월 11일에 출옥하였다. 1946년 7월 27일 중국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3년 11월 14일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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