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종
金順鐘1899. 2. 20 ~ 1972. 3.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혁우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제주 해녀투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고봉(孤峰)이며 자는 익성(翼成)이다. 1899년 2월 2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하도리(下道里)에서 김용서(金龍瑞)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도리에 야학강습소를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제주 해녀 투쟁의 주모자인 김옥연(金玉連) 등을 배출하였다. 이후 구좌면 세화리(細花里)로 이주하여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30년 3월 세화리 문도배(文道培)의 집에서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강관순(姜寬順) 등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을 결성하고 소집책임자에 선임되었다. 이 단체는 소년, 청년, 여성, 농민 등을 계몽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의식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혁우동맹을 중심으로 같은 해 9월 김시화(金時化) 집에서 신재홍·오문규 등과 함께 농촌의 청년과 해녀를 규합할 방법을 협의하였다. 11월에도 신재홍·문도배 등과 함께 모임을 갖고 구좌면 일대의 해녀 투쟁에 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1월 혁우동맹은 동지 간의 불신이 발생하는 등 활동이 침체되었다. 그 무렵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어 제주로 돌아온 강창보(姜昌輔)의 주도로 개최된 ‘제주도 사회주의운동자 간담회’에 참석하여 도내 청년 단체의 해소 및 농민·여성 문제 등에 대해 동지들과 협의하였다. 결국 4월 혁우동맹은 해체되어 5월 사회운동의 통일체인 조선공산당 제주야체이카가 재결성되자 이에 흡수되었다. 같은 해 11월 구좌면 책임자 신재홍과 함께 기존의 해녀조합 대신 해녀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해녀조합을 조직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였다. 당시 제주 해녀들은 해녀조합의 어용화와 해산물 매수 가격을 둘러싼 부정으로 인적 물적 수탈을 당하던 상황이었다. 1932년 1월 해녀조합에 대한 지정판매제 반대 등 8개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해녀 1,000여 명이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해녀들은 세화주재소까지 몰려가 시위하는 등 항일운동의 기세를 높였다. 일제 경찰은 이 활동의 주동자 및 배후 조종 혐의로 전 제주도에 걸쳐 해녀와 청년운동가 100여 명을 검속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5월 1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이송되어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3년 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같은 해 6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제주도 구좌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경상남도 부산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72년 3월 2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