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두
康國斗1887. 11. 1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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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87년 11월 14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북창면(北倉面) 중하리(中下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음력 11월 평남 순천에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단원들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광복군 사령장(司令長)인 조맹선(趙孟善)의 명령에 따라, 1920년 12월 17일 조용하(趙用河)를 단장으로 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및 단원 모집, 관공리(官公吏) 암살 등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1920년 10~11월경, 조용하는 조맹선이 제공한 권총과 탄약 등의 무기와 격고문(檄告文) 등 관련 문서를 가지고 국내로 들어와 궁이양(弓履陽)에게 단원 모집을 부탁하였다. 그 결과 그해 12월 17일 순천군 선소면(仙沼面) 남포리(藍浦里)에 있는 장두현(張斗鉉)의 집에서 16명의 동지가 모여 대한독립청년단이 결성되었는데, 이 자리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후 50여 명의 단원을 모집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한 후 궁이양과 이율수(李律洙)·이병탁(李炳鐸) 등과 함께 1920년 (음)12월 28일 순천군 북창면(北倉面) 한령리(汗嶺里) 백낙현(白樂顯)의 집에 들어가 현금 100원을 모금하고 이후 600원을 지급하겠다는 증서를 받아냈다. 다음 날인 12월 29일에는 봉명면장(鳳鳴面長) 김형철(金瑩哲)의 집에 들어가 현금 250원을 군자금으로 모금하였다. 당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들은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하려고 주로 외딴집, 산촌에 있는 굴이나 절(寺院) 같은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붓장수나 약장수 등으로 변장하거나 천도교도 혹은 기독교도처럼 행세하면서 주로 한밤중에 활동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중 1921년 4월, 동료 단원 30여 명과 함께 순천경찰서에 붙잡혔다. 그해 8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90일포함) 형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22년 5월 10일에 풀려났다. 이후 1926년 8월 당시 서울 시내 고학생학우사(苦學生學友社)에서 고학생들을 위한 합숙소 건축비를 모금할 때 이병탁·장두성(張斗星)·강국근(康國根) 등과 함께 모금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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