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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金星七

1881 ~ 1911. 8.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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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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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보현 의진(신보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정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상치등면(上置等面) 사창동(社倉洞)에서 태어났다. 1909년 재판 당시 31세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김두현(金斗鉉) 또는 김낙형(金洛馨)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집안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신보현 의병부대에서 활동했던 김선여(金善汝)의 판결문에 따르면, 총기 250여 정 등을 보유한 3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의병부대였다. 신보현은 1908년 이래 전북 순창·고부(古阜)·태인(泰仁)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15일 신보현 부대에 참여하여 5일간 신보현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120여 명과 순창군 내 촌락을 무대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잠시 신보현 의병부대를 떠나 있다가 1909년에 다시 합류하여 도통령(都統領)직을 맡았다. 이후 부장 이용서(李用西) 외 12명과 전북 순창·고부·태인·부안(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11월 전북관찰사 이두황(李斗璜)이 내부대신 박제순(朴齊純)에게 보낸 보고서에 그를 “이 조직의 괴수”로 칭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소규모 의병부대의 활동을 이끌었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1909년 11월 1일 오후 4시 전북 김제군(金堤郡) 홍산면(洪山面) 내리(內里)에서 김제주재소 순사와 김제헌병대로 구성된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4명이 전사하고 그를 포함한 4명이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19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1년 8월 20일 옥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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