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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金聖載

1877. 2. 17 ~ 194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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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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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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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심남일 의진(심남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77년 2월 17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봉덕리(鳳德里)에서 태어났다. 김학선(金學善) 또는 김학호(金鶴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집안 배경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서울 시위대 및 원주 진위대 소속의 군인들의 무장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의병 항쟁이 전개되었다.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출신의 의병장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노병우(盧炳友)·나성화(羅聖化)·최우평(崔友平)과 함께 후군장(後軍將)에 임명되어, 함평군·장흥군(長興郡)·남평군(南平郡, 현 나주시)·화순군(和順郡)·나주군(羅州郡)·영암군(靈巖郡)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심남일 의병부대는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와 연합 작전을 펼쳤는데, 이때 전남 보성군(寶城郡) 석호산(石虎山)에서 의병장 안규홍을 만나 작전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의병을 해산하라”라는 고종의 조칙(詔勅)이 내려지자 심남일 의병부대는 1909년 7월 21일 전남 영암 금마면(金磨面) 고인동(古引洞)에서 해산하였다. 이에 전북 정읍군(井邑郡)으로 은신하였다. 이후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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