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삼
金聖三미상 ~ 1904. 9.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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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서울 아현동(阿峴洞) 출신이다. 1904년 경의선(京義線) 철도 부설 작업을 지연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원래 경의철도는 1896년 프랑스 피브릴르사가 한국 정부로부터 부설권을 양허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1898년 국제 정세의 변화로 프랑스에서 경의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매각하려 하였지만 일본 측에서 거절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 9월 궁내부 내장원에 이용익(李容翊)이 주도하는 서북철도국을 설치하여 경의철도를 직접 건설하려 하였다. 이용익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철도국의 경의철도 자력 건설은 의화단사건 이후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확장을 모색하던 일본에 크게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고무라(小村壽太郎)는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정치 상황이 절박하다고 판단하고, 장차의 전쟁 가능성을 예상하여 유사시에 대비해 군비를 조속히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확보된 철도 이권이야말로 유사시에 출병권을 주장할 유일한 수단인 동시에 권리가 될 것이라 파악하고 경부철도의 속성과 경의철도 부설권의 획득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경의철도 종착지인 의주는 러시아 안봉철도(安奉鐵道)의 종착지인 안동과 국경을 마주한 지역으로 양국 철도 계획의 충돌점과도 같은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러시아의 용암포 조차에 대항하여 개시를 요구한 지역이기 때문에 단순한 철도 이권 이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서울-의주 군용 철도 부설을 위한 임시 군용철도감부(臨時軍用鐵道監府)를 설치하고, 이를 한국 주재 일본군사령관 예하에 전속시킴으로써 군사적인 목적을 그대로 드러냈다. 러일전쟁을 구실로 한 일제의 경부·경의철도 건설은 일거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1,000킬로미터 이상의 대철도망 형성을 가져왔다. 일제의 이러한 의도를 알아채고 신수철리(新水鐵里)에 거주하는 안순서(安順瑞)와 양주에 거주하는 이춘근(李春勤)과 함께 경의선(京義線) 부설 작업을 지연시키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1904년 9월 21일 오전 10시에 서울 공덕리에서 동지들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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