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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金成三

1869 ~ 1908.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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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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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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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돌석 의진(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869년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삼척군 상장면(上長面) 황지(黃地)에 거주하였다. 1906년 신돌석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활동할 때까지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신돌석은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남면 복평리(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출신으로 1896년 을미의병 때 평해(平海)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기반이 조직적이지 못하여 훗날을 기약하며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3월 13일 다시 경북 영덕(盈德)에서 거의하였다. 이때 의병의 전투 능력은 전기 의병에 비해 다소 향상되었으나 의병장은 여전히 유생이나 전직 관료가 대부분이었다. 농민들이 전투력의 주축을 이루었고, 광무(고종) 연간에 활동하던 포수나 활빈당 등이 합류하기도 하였다. 신돌석은 평민 출신으로 영양·청송·의성·봉화·삼척·정선·강릉·원주 등 경북·강원도 일대에서 태백산맥의 산악 지대를 이용한 유격전을 감행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인근 일대에 그의 명성이 크게 떨쳐 따르는 군사가 3,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러한 신돌석 의병부대에 1906년 4월 합류하여 관동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강원도 삼척에 사는 누이를 보기 위해 1906년 4월 27일 삼척에 온 황청일(黃淸一)에게 “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의지로 의를 일으켜 외적을 물리치려 하니 그대도 소모에 응하라”라고 의병 가담을 권유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강원도 삼척·이천, 경북 울진 등지에서 광산노동자 수백 명을 모집하였다. 1907년 군대가 강제해산되고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강원도 삼척에서 봉기하여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으로 활약한 성익현(成益顯)과 함께 강원도 울진·삼척, 경북 안동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울진군 서면(西面) 동수동(東水洞)에서 일본군과 전투하였다. 같은 해 12월 8일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던 중 부하 3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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