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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

金成魯

1863 ~ 190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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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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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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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63년 태어나 전라북도 임실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에 나섰다. 언제부터 의병 활동을 전개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망 연도를 고려해 볼 때 1907년 정미의병이 전개되고 있을 때로 추정된다. 1907년 8월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당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가세하면서 일본과 전면 전쟁의 성격을 띠는 대일 항전이 확대되었다. 해산 군인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의 전력을 강화시켰다. 1907년 11월에는 전국 연합 의병의 성격을 갖는 13도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수복을 목표로 의병활동을 개진하였다. 이에 1908년 1월 양주에 의병 1만여 명이 집결하였고 13도 창의군은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는 서울 탈환 작전을 결행했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패산하고 말았으며, 그 후 의병들은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가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후기 의병기 호남의병은 전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군경과의 교전횟수와 교전 의병, 그리고 희생자 수에서도 호남의병은 단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 호남 지역의 마을마다 의병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의병 15명 정도를 이끌고 활동했으나, 1909년 10월 25일 임실군 강진면(江津面) 율치(栗峙)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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