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달
金聖達1881 ~ 1907.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진(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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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907년 사망 당시 27세였으므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신동면(身東面) 노목리(老牧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 5월 충청북도 제천(堤川)에서 창의한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의 좌종사(坐從事)로 활동하였다. 문경 가은(加恩) 출신의 이강년은 1896년 정월 문경에서 창의하여 유인석(柳麟錫)이 이끌던 호좌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1907년 5월 11일 제천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강년은 같은 해 8월 민긍호 부대와 연합하여 제천전투(堤川戰鬪)에서 크게 승리하고, 8월 19일에는 영월의 주천(酒泉)에서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이 되었다. 하지만 8월 23일 충주전투(忠州戰鬪)에서 크게 패하자, 이강년은 다시 근거지인 경북 문경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이강년은 9월 7일 문경읍을 공략하여 점령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가 문경을 점령하자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는 남부수비관구사령관에게 명령하여 제14연대장 기구치(菊池主殿) 대좌에게 ‘토벌대’를 편성하여 의병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결국 9월 9일 제14연대장 기구치 대좌는 제3종대를 이끌고 문경으로 갔으며, 제47연대장 나리다(生田) 대좌는 제4종대와 제5종대를 이끌고 함창에 도착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아다치 지대(足達支隊)와 9월 9일 조령전투(鳥嶺戰鬪), 9월 10일 갈평전투(葛坪戰鬪), 9월 14일 적성전투(赤城戰鬪) 등을 수행하다가 패하고 말았다. 이후 일본군은 이강년 의병부대의 근거지로 대승사(大乘寺)와 김룡사(金龍寺)를 지목하고 의병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각처에서 살인과 약탈, 그리고 방화를 자행하였다. 이 당시 신동면 노목리에 거주하면서 이강년 의병부대의 좌종사로 활동하다가 의병 지원이 발각되어 제14연대장 기구치 대좌가 지휘하는 제3종대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 1907년 9월에 사망하였다. 단 다른 자료에 따르면 『진중일지(陣中日誌)』 1907년 9월 17일자에 ‘아군(我軍)의 상황을 탐지하여 의병에게 편익을 주고 의병의 수족으로 거류민(居留民)에게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체포하여 신문 중에 도망을 기도하였으므로 오전 11시에 사살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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