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오
金順五187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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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77년경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에서 태어났다. 1908년 대구공소원에서 재판을 받을 당시 판결문에 31세로 기재된 것을 볼 때, 1877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 당시 주소는 전남 장성군 외동면(外東面) 작동(鵲洞)이었다. 1907년 의병 활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후기 의병은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당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가세하면서 일본과 전면 전쟁의 성격을 띠는 대일 항전으로 확대되었다. 후기 의병 시기 호남의병은 전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남 지방에서는 전기 의병 이후 의병에 계속 참여한 기삼연(奇參衍)을 중심으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었다. 이로부터 수많은 의병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1908~1909년 사이에 호남 지방은 의병항쟁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08년 (음)4월 16일 박준학(朴俊學) 의병장의 지휘 아래 김재구(金在球) 등 동료 의병 6명과 함께 군자금품을 모집하려고 전남 창평군(昌平郡) 내면(內面) 지곡(芝谷)에 거주하는 정도사(鄭都事)의 집으로 가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08년 11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08년 12월 2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12월 22일 상고하였으나 1909년 1월 13일 대심원 형사부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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