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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협

金壽莢

1853 ~ 1896.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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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수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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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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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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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영수(英叟)이다. 1853년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리(西邊里) 사촌(沙村)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 의병부대 의병장 김상종(金象鍾)의 족숙(族叔)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의성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의성 지역에서는 주변 지역의 영향을 받아 1896년 3월 3일 향교에서 창의 통문을 돌리고, 3월 14일 향회를 열어 점곡면 사촌 유생 김상종(金象鍾)을 창의장으로 추대하였다. 3월 25일 김상종이 창의장에 취임하고 의병부대의 진용을 편성하였다. 지휘부 편제는 대장 아래, 중군장(中軍將)·우익장(右翼將)·소모장(召募將)·관향장(管餉將)을 두었는데, 이때 관향장에 선임되었다. 지도부는 대개 의성 점곡면 지역의 유생으로서 김상종 대장과는 혈연(血緣) 또는 지연(地緣) 관계의 인사들이었고 병력은 주로 농민들과 포수들로 구성되었다. 1896년 4월 1일 처음 출진하여 의성읍 남쪽 구봉산(九峰山) 곧 구성산(九成山)에 진을 쳤다. 그런데 그날 바로 관군, 즉 대구지방대(大邱地方隊)가 북상한다는 척후의 보고를 접하였다. 당시 관군은 함창(咸昌) 태봉(泰封)에 주둔한 일본군 병참대와 태봉전투를 감행한 경북 북부 지역의 연합 의병부대를 탄압하기 위해 출동하던 중이었다. 4월 2일 구성산에서 관군과 접전을 펼쳤다. 의병장 김상종의 지휘 아래 오전 5시경부터 오후 1시경까지 약 8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관군 2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퇴각하던 관군에 의해 의성 읍내 관아(官衙)와 민가가 거의 불태워지는 피해를 입었다. 의병부대는 전열을 정비하러 4월 11일 의성 옥산면(玉山面) 황산(黃山)과 4월 16일 안동(安東) 길안면(吉安面) 용담사(龍潭寺)로 진을 옮겼다가 4월 21일 다시 황산으로 회진하였다. 이후 5월 10일 대구 및 군위의 관군 150여 명이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옥산면 금학리(金鶴里) 고무실(鈷鉧谷)로 진을 옮기려고 선발대를 파견하였다. 그 사이 5월 10일[(음) 3.28] 밤 관군의 급습을 받고 이튿날 오전까지 접전을 벌였다. 이것이 황산전투였다. 저녁부터 큰 비가 내려 화약은 진흙이 되고 장비는 모두 젖어 못쓰게 되었다. 이 틈을 탄 관군의 공격으로 선봉장 김수담 등 장졸 20여 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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