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택
金聖澤187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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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910년 재판을 받을 당시 판결문에 33세로 기재된 것을 볼 때, 1878년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재판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돌산군(突山郡) 삼산면(三山面) 초도리(草島里)였고, 주막업에 종사하였다. 황준성(黃俊聖)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전남 완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황준성은 전라북도 진안 출신으로 1907년 대한제국군 참령이었는데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항쟁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월 28일에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10년 형을 선고받고 전남 완도(莞島)에 유배되었다. 유배 중 전남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함을 듣고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강성택(姜成宅) 의병장의 부하 수십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고금(古今)·청산(靑山)·여호(麗湖)의 여러 섬과 해남군(海南郡) 화이면(花二面)의 각 마을을 돌며 활동하였다. 1909년 7월 완도군 북종면(北從面) 이진리(梨津里)에서 추기엽(秋琪燁)·황두일(黃斗一) 등에 의해서 의병장에 추대되었으며, 강성택·추기엽 등을 부장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황준성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던 중 의병장 황준성의 명령으로 1909년 (음)5월 4일 수부(水夫) 이병현(李炳鉉)의 도움을 받아 총기 8정을 휴대하고 완도군 청산도에 상륙하여 청산면 내 도청리(道淸里) 외 4개 마을의 이장들로부터 5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어 같은 달 6일에도 이병현과 함께 여서도(餘瑞島)에 들어가 중리(中里) 김기선(金基宣) 외 1명에게 10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중에 체포되어 1910년 11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겪던 중 1912년 9월 13일 이른바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詔書)」로 1913년 1월 27일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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