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천
金聖天188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창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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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83년경 충청남도 연산군(連山郡)에서 태어났다. 김창현(金昌鉉)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충남 은진·금산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경성공소원에서 재판을 받을 당시 주소는 충남 연산군 적면리(赤面里) 신풍동(新豊洞), 이명은 김성찬(金聖賛)이었으며, 직업은 고용인이라 하였다. 충남 지방은 의병 전쟁 전 기간에 걸쳐 의병 전쟁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전기·중기 의병 단계에서 충남 지방, 특히 내포 지방 항일 세력이 결집되어 조직한 홍주의병은 전국의 무수한 단위 의병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투쟁을 벌인 의병이었다. 1907년 6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대한식민지화를 단행하려고 7~8월에 걸쳐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한국군을 강제해산하자, 이들 일련의 침략 사건들을 계기로 전국에서 전면전과 다름없는 격렬한 항일전이 벌어졌다. 특히 군대해산은 의병 전쟁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산 고조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해산을 거부한 이들이 의병으로 전환됨으로써 의병 전쟁에 강력한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해산 군인들이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편성하거나 기존의 부대에 흡수됨으로써 이후 의병은 무기와 전술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 전국 각지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후기 의병 시기의 의병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참여 의병들의 신분층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이전 시기의 양반 관료나 유생 등 지배층에서부터 해산 군인 및 포수와 농민·상인, 심지어 머슴 등 다양한 직업의 하층 신분에 이르기까지 전 신분층이 능동적이고도 주도적으로 의병 전쟁에 투신하였다. 충남 지역에서도 소규모 단위 의병부대에 의해 산발적으로 항일전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신분층이 참여하였다. 이들 의병은 많게는 150명 규모부터 적게는 10여 명 내외의 소규모 부대까지 다양한 규모로 주재소·분파소 등을 과감히 습격하였다. 또한 경내 각처에서 일본 헌병·경찰대와 크고 작은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군자금과 군수품 수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0월 3일 김창현 의병장이 심상의(沈相意)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의병 200여 명의 병력으로 금산읍을 공격할 때, 이에 참여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 연합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금산 읍내의 경무고문분견소, 우편취급소, 세무서, 일본인 등을 공격하였고 각종 무기와 군수품을 획득하였다. 이후 1909년 (음)7월 25일 이성근(李聖根)·배을룡(裵乙龍)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충남 은진군 삼거리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음)8월 3일 은진군 구자곡면 시암산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1909년 11월 22일 공주지방재판소 판결을 거쳐 1910년 1월 18일 경성공소원에서 종신 징역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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