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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천

金聲天

미상 ~ 1926.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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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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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옹진(甕津)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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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황해도 옹진군(甕津郡)에서 출생하였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 후 초토화된 남만주(南滿洲)의 독립군 기지와 이주 한인 사회를 복원하고, 재만 독립운동계의 항일 무장 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려고 1922년 8월 17개 단체가 통합하여 성립된 독립운동 단체다. 통의부는 성립 당시 구성원 모두의 이념과 노선을 무시하고 오직 조국 광복만을 위해 매진할 것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성립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1923년 초 복벽주의(復辟主義) 계열의 인사들이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를 만들어 이탈하였다. 그리고 1924년 전반기에는 오직 항일 무장 투쟁만을 일념으로 한 인사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만들어 임시정부 산하 독립군단(獨立軍團)임을 자임하며 빠져나갔다. 이에 통의부 지도층은 남만주의 타 독립운동 단체와 통합운동을 벌여 1924년 11월 24일 정의부를 탄생시켰다. 통의부가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조직이 분열되고 또 다른 단체들과 통합해 새로운 구성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예전 소속원으로 활동하기를 원해, 새로운 단체에 편입되지 않고 통의부 대원으로 활동을 이어 가기도 했던 것이다. 1926년 초 압록강을 넘어 고향 황해도로 진입하였다. 먼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러 여러 곳을 다니다가 해주군(海州郡) 동운면(東雲面) 운양리(雲陽里)에 있는 동흥사(東興寺)의 승려 이관조(李官祚)를 만나 동지가 되었다. 이때 이관조에게 자신이 통의부(統義府)의 군자금 모집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기는 통의부가 다른 7개 단체와 통합해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던 때이다. 따라서 통의부 소속이라 한 것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함이거나, 통의부가 다른 단체와 통합하는 것을 반대해 계속 통의부원으로 남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다. 두 사람은 4월 15일 검단면(檢丹面) 도락리(道樂里)에 있는 유정무(柳正茂)의 집에 기습적으로 들어 가서 군자금을 요구해 받아냈다. 계속해 주변의 다른 두 부호의 집에서 같은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5월 7일에는 연백군(延白郡) 괘궁면(掛宮面)의 부호 조양선(趙養善)의 집에서 수십 원의 군자금을 받아냈다. 5월 12일에는 해주읍으로 옮겨 그곳의 갑부 이승준(李承駿)의 집에 기습해서 들어갔다. 이승준에게 군자금은 제공받지 못하고 해주경찰대의 추격만 받게 되었다. 당시 한 달 가까운 군자금 모집 활동으로 일제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물론 황해도 내 부호들도 독립운동가들을 경계하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해주의 수양산(首陽山) 산기슭에서 일제 경찰대와 전투를 벌이던 중 이관조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체포되기를 거부하여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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