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金成在미상 ~ 19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단
- · 광정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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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9) 황해도에서 출생하였다. 출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892년 혹은 1900년으로 되어 있으나, 정확히 알 수 없다. 1921년 후반 중국 창바이현(長白縣)에 근거지를 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단은 1921년 (음)9월 창바이현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이 푸쑹현(撫松縣)에 진영을 둔 흥업단(興業團)과 통합해 이루어진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창바이현과 푸쑹현은 접해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두 군단은 보다 넓은 활동 범위를 확보해 강력하고 효율적인 항일전을 치르려고 통합한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소대장 김성연(金成淵)이 지휘한 유격대에 가담해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쳤다. 이때 26명으로 이루어진 유격대 참모에 임명되었다. 11월 8일 함경남도 삼수(三水)로 진출한 유격대는 자정 무렵 호인면(好仁面) 운전리(雲田里)에 위치한 경찰관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였다. 주재소로 돌진한 유격대는 숙직 중이던 일제 경찰 토미마츠(富松辨四郞)와 아라타(新田常太郞)를 처단하였다. 이어 한국인으로 일제에 협력하던 자위단원(自衛團員) 10여 명을 항복시킨 뒤 “우리는 곧 독립할 것이니 일제에 협력하지 말라”라고 명령한 뒤, 장총과 권총·탄약 등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해당 주재소는 전소시켰다. 이듬해 4월 대한국민단은 태극단(太極團)·대진단(大震團) 등과 통합해 광정단(光正團)으로 탄생하였다. 태극단은 창바이현이 근거지였고, 대진단은 안투현(安圖縣) 흥도자(興道子)에 본부를 둔 군단이었다. 따라서 창바이·푸쑹·안투현 등 서간도 동부(東部) 대부분의 지역을 활동무대로 만들었다. 광정단은 단장 윤덕보(尹德甫), 부단장 강건(姜健), 총무 이한평(李漢平)이 선임된 총부(摠部)를 설치하고, 그 밑에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 등 10개 중앙부서를 두었다. 그리고 이미 확보한 3개 현(縣) 외에 린장현(臨江縣)까지 포함시켜 이들 지역에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이때 광정단 군사부 소속 하사(下士)에 임명되었다. 1923년 중반 퉁화현(通化縣) 강산(岡山) 두도구(頭道溝)에 파견되었다. 압록강과 접한 지안현(輯安縣) 북쪽에 위치한 퉁화현은 국경과는 약간 떨어진 지역이었다. 이곳에 주둔한 목적은 무기를 비롯한 군사 장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 김(金)씨 성을 가진 파견대 대장이 중국 보갑대(保甲隊) 대장 주기산(周岐山)과 협상해 무기를 구입하기로 약조하였다. 중국 측은 선금을 주면 무기를 구입해주겠다고 약속하고 150원을 받아갔다. 그런데 중국 측은 돈을 가지고 무기를 구입하러 간 중국인이 중도에 사망하였다고 알려왔다. 따라서 사람의 목숨 값으로 이전에 준 돈 이외에 100원을 더 지불하라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를 독립군 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중국 측은 계속 금액을 올려가며 강압적으로 나왔다. 결국 이 마찰은 무력적 충돌로 변해 양측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김상진(金尙鎭)·최덕희(崔德熙)·장재명(張在明)·박문거(朴文巨)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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