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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인

金成仁

1883 ~ 1920.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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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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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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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20년 사망 당시 37세였으므로 1883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경 북만주의 신촌평(新村坪)에 거주하였다. 북만주는 1909년 여름부터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을 비롯해 이승희(李承熙)·김학만(金學萬)·정순만(鄭淳萬) 등 민족운동가들에 의해 국외 독립운동 기지로 개척된 지역이었다. 이들 민족운동가들은 기지 개척 초기 한인들을 미산(密山)의 펑미산(蜂密山) 일대로 집단 이주시켜 한인 촌락인 한흥동(韓興洞)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910년대에는 주변으로 한인 사회를 확대해가며 대규모의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하였다. 신촌평도 이러한 경위를 거쳐 형성된 한인 마을이었으며 거주 한인 대부분은 독립운동 단체의 일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망국(亡國)을 예견하고 북만주를 비롯해 서북간도(西北間島) 지역으로 망명한 민족운동가들은 10여 년간 온힘을 바쳐 독립운동 기지 구축에 노력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 조국 광복에 대한 희망이 생기자 독립전쟁을 추진할 독립군단(獨立軍團)을 결성하였다. 북간도에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국민회군(國民會軍) 등과 서간도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등 수십 개의 항일군단들이 성립되었다. 독립운동 기지 건설 기간에 많은 준비를 갖춘 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을 수행하였다. 일제 침략 기관인 경찰서·군파견대·군청 및 면사무소를 기습 공격해 파괴하고, 친일파 및 침략 수괴들을 처단하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약 2만 명의 일본군을 서북간도(西北間島)로 침입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이란 만행을 저질렀다. 이주 한인 사회와 독립군 기지가 가장 광범위하게 형성된 북간도와 그 주변에 침입한 일본군 병력은 주력 부대인 19·20사단이었다. 그리고 북간도의 영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왕칭현(汪淸縣) 방면을 향한 것은 19사단 소속 제76연대 연대장 기무라 마스조(木村益三)가 이끈 기무라지대(支隊)였다. 기무라지대는 76연대를 주력으로 기관총대·특종포대·기병대·산포병대(山砲兵隊)·공병대·헌병대·통신반 및 위생대 등 각종 지상군을 모두 참여시킨 전단(戰團)이었다. 왕칭현의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여러 독립군단의 진영과 한인 사회를 철저히 분탕질한 기무라지대는 10월 하순경 북만주의 석두하자(石頭河子)에 도착하였다. 중동선(中東線) 연선에 위치한 석두하자는 1910년대에 이미 대규모 한인 사회가 형성되어 미주 대한인국민회의 산하 지회가 결성된 곳이었다. 따라서 거주 한인 대부분이 독립운동자이거나 강한 배일(排日)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을 미리 간파한 기무라지대는 석두하자에 주둔하며, 일제 밀정의 보고에 의해 파악된 그곳과 주변의 독립운동자들을 색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1920년 10월 22일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채남섭(蔡南涉)·김원삼(金元三)·김기봉(金基鳳) 등 11명과 함께 석두하자로 끌려가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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