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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오

金聲五

1901. 6. 18 ~ 198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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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오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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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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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혁우동맹
  • · 제주 야체이카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제주해녀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연평리(舊左面, 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에서 김용익(金用益)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훈록』에는 1901년에 출생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1933년 판결문에 24세로 기록되었고, 『신분장지문원지』에 융희 4년(1910년)에 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1910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 3월 구좌면 세화리(細花里) 문도배(文道培)의 집에서 신재홍(申才弘)·강관순(姜寬順) 등과 함께 “사유재산제도와 일본 제국의 통치를 부인할 목적”으로 혁우동맹(革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그해 11월 말 해녀들의 자유로운 판매를 가로막는 해녀조합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일로 구성원 일부가 검거되어 활동이 위축되고 동지들간 불신까지 겹쳐 혁우동맹의 활동은 지지부진해졌다. 1931년 5월 16일 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강창보(姜昌輔)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제주 야체이카가 결성되었다. 혁우동맹의 구성원이었던 신재홍이 제주 야체이카에서 구좌면 등의 책임을 맡게 되었는데, 신재홍의 제안에 따라 혁우동맹을 해체하자 혁우동맹 맹원으로서 강관순과 함께 제주 야체이카의 당외(黨外) 기관분자로 가입하였다. 1931년 7월에 구좌면 연평리 고자화(高子華)의 집에서 강관순·고자화(高子華)·우봉준(禹奉俊)·고원한(高元澣) 등과 함께 ‘적(赤)’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청년부 책임을 맡았다. 그 외에 강관순은 연결부, 고원한은 여성부, 고자화는 농민부를 각각 맡아 지역 내 각 대중 단체를 지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931년 11월부터 1932년 1월 말까지 제주 해녀들이 해녀조합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운동을 벌였는데, 이 시위의 배후를 찾는 과정에서 제주 야체이카의 존재가 드러났다. 제주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졌고, 이때 동지들과 함께 검거되었다. 당시 100여 명이 검거되어 한 달 후인 1932년 3월 60여 명이 석방되었다. 이때 해녀들은 주모자 3명 외에 모두 석방되었지만, 청년들은 대부분 석방되지 못한 채 그해 5월 모두 목포의 검찰청으로 넘겨졌다. 연말인 11월 30일 예심이 종결되어 동료 39명과 함께 공판에 부쳐졌다. 1933년 2월 28일 광주지검 목포지청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6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며칠 후인 6월 22일 형집행이 정지된 기록이 있으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1934년 일왕 쇼와(昭和)의 태자 출생으로 감형되었으며, 그해 말 12월 28일 형기 만료를 두 달여 앞두고 가석방되었다. 출옥 이후 일제의 감시와 미행으로 행동이 어려워 동지 강관순과 함께 함남 원산(元山)으로 가서 항해사 시험을 보아 합격하였다. 이후 부산 영도(影島)에서 항해사로 일하며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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