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이
金仙伊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상태 의진(김상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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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0년경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09년 당시 31세였으므로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순흥군(順興郡) 봉양면(鳳陽面) 덕거리(德巨里, 현 영주시(榮州市) 부석면(浮石面) 임곡리(林谷里) 덕거촌(德巨村)) 출신이다. 1909년 김상태(金相台)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김상태는 충청북도 영춘(永春) 남천(南川) 출신으로 1896년 전기 의병 때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와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정운경(鄭雲慶)과 함께 충북 제천(堤川)에서 재기하여 1907년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세하였다. 이강년 휘하에서 중군장으로 강원·경북 지역 일대에서 맹활약하였다. 1908년 (음)6월 이강년이 청풍(淸風) 작성(鵲城)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잡히자 그의 지휘권을 인계받아 의병을 이끌었다. 1909년 3월 충북 단양군(丹陽郡)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2명을 사살하였다. 김상태 의병부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5월 25일경부터였다.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그의 지휘를 받아 활동하였다. 1909년 7월 상순부터 경북 봉화(奉化)·영주(榮州), 강원 영월(寧越) 등의 소백산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부대의 유격전을 펼쳤다. 1909년 9월부터 일본군은 소백산 일대의 의병들을 탄압하려고 ‘대토벌작전’을 펼쳤으나, 김상태·정경태(鄭敬泰)·최성천(崔聖天)·윤국범(尹國範) 등이 이끄는 의병들은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으며 계속 활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에게 잡혀 1909년 10월 13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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