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현
金奭鉉1890 ~ 1909. 8. 13
관련 단체
- · 박기섭 의진(박기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출생연도, 출신지, 성장 과정 등은 알려진 바 없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식민지화가 본격화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퇴위하고, 한일신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름에 따라 전국에서 의병 항쟁이 전개되었다. 황해도의 경우 1906년부터 의병이 봉기하였다. 1906년 황해도 서부 지역에서 우동선(禹東鮮)이 의병을 일으켜 정동의려대장(正東義旅大將)이 되었다. 우동선은 구월산 월정사에 연합본부를 설치하고, 1907년까지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서 의병 활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이후이다. 목천 군수를 역임한 박기섭(朴基燮)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계열의 유생들로부터 추대를 받아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켰다. 박기섭 의병부대에는 수천 명의 의병이 참가하였으며, 평산군(平山郡) 일대를 중심으로 장수산·멸악산 등에서 일본의 침략 기관을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08년부터 일본군이 의병 ‘대토벌’을 실시하자 이후 의병항쟁의 양상 또한 소단위부대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이른바 ‘평산의병부대’로 이후 황해도 전 지역을 아우르는 의병 항쟁을 주도하였다. 이 ‘평산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황해도 지역 의병 ‘대토벌’에 나선 일본군은 1909년 8월 10일 서흥경찰서 소속 순사 3명과 밀정 1명, 수비대 소속 병사 4명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8월 13일 평산군 멸악산 서쪽에 의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부근을 탐문하였다. 그 결과 평산군 화천면(花川面) 평촌(坪村)에 의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급습하였다. 동료 의병 16명과 함께 각자 양총으로 무장하고 이들에 맞서 1시간가량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복부를 관통당한 채 일본군에 붙잡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동료 의병 1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도주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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