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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려

金生麗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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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생려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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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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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76년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에서 태어났다. 천마별영(天摩別營)에서 활동하였다. 천마별영은 원래 천마산대(天摩山隊)가 광복군총영과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부대원들이 광복군총영에 파송되어 무기를 공급받고 투쟁 방안을 지시받는 등 국내 별동대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광복군총영 천마별영이라고 불렸다.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평북 의주군을 거점으로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무장투쟁 단체로 주로 평북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해발 1,169미터의 험준한 천혜의 요새인 천마산을 근거로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그 규모가 최대 200명에서 최소 40여 명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구한국 군인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천마산대 조직은 사령장 최시흥, 부관 최지풍(崔志豊), 참모 박응백(朴應伯)·박영찬(朴泳燦)·최윤희(崔允熙), 경리 김세진(金世鎭), 중대장 최의집(崔義輯), 소대장 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 등으로 구성되었다. 천마산대는 군자금 모집,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의 파괴, 일본 군경 및 친일 분자 처단, 일제와 교전 등을 수행하였다. 특히, 1920년 3월부터 6월까지 20여 회에 걸쳐 구성·삭주·선천·의주·자성·강계·벽동·위원·정주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친일 행각을 벌인 선천군 태산(台山)면장 김은기와 대창(大昌)면장 강창헌 및 의주경찰서 형사 김명익 등 친일 분자들을 처단하였다. 그 밖에 선천군 태산면·문옥면, 철산군 여한면, 벽동군 송서면·송회면, 강계군 외귀면, 의주군 옥상면 등지의 면사무소를 습격, 파괴하였다. 한편으로 삭주군 구곡면·벽동군 송회면·의주군 옥상면·창성군 동창면·구성군 사기면 신시 등의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고 무기를 노획하였다. 이 밖에도 옥상면 우편소를 공격하여 일제의 우편 행랑을 빼앗았다. 천마산대의 격렬한 무장투쟁으로 말미암아 1920년 3월부터 7월까지 평북 일원의 관공리와 친일 분자들은 일제 경찰의 보호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특히 생명의 불안을 느낀 면장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여 선천·용천·구성·의주군 등은 행정이 마비될 정도에 이르렀다. 천마산대를 조직한 최시흥은 천마산대 활동을 이끌면서도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과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최지풍·이동규·허기호 등의 부하들에게 서신을 주어 광복군총영에 파송하여 무기를 공급받고 투쟁 방안을 지시 받는 등 국내 별동대로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를 광복군총영 천마별영이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광복군총영의 사령(司令)에는 대한독립단의 조맹선(趙孟善)이 선임되고, 참모장에 이탁, 경리부장에 조병준(趙秉準), 본영 영장에 오동진(吳東振)이 취임하였고, 모든 영원(營員)은 임시정부의 군인 신분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총영의 조직은 총사령부의 본부인 총영 이외에도 국내외 각 도와 군에 도영(道營), 군영(郡營), 또는 별영(別營)을 두도록 하였는데 별영은 천마별영과 벽파별영(碧波別營)이 대표적인 조직이었다. 천마산대는 그 후 광복군총영 → 대한통의부 → 육군주만참의부로 변화되는 서간도 지역의 독립군 통합 군단의 주도적 단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 무력 부대로 활동하였다. 1923년 9월 21일 최시흥의 부하가 되어 동지 16명과 함께 고향인 평북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倉站)에 가 파출소와 면사무소, 그리고 민가 20여 호에 불을 지르고 순사와 친일 동민들을 처단하였다. 당시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조준룡(趙俊龍)·이부도(李富道)·이지선(李芝善)·송영령(宋英玲)·송여덕(宋汝德)·함병병(咸炳倂)·최운기(崔雲基)·이찬지(李燦之)·조창호(趙昌浩)·조삼룡(趙三龍)·장기순(張璣淳)·김봉준(金鳳俊)·맹희준(孟希俊)·박기순(朴基淳)·변창룡(邊昌龍)·이찬기(李燦基)·김윤건(金允建)·한기송(韓基松)·송찬호(宋燦浩)·조성룡(趙聖龍)·함기수(咸基秀)·유승익(劉承益)·김중보(金仲甫)·유승언(劉承彦) 등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으로 희천경찰서에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결국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방화와 살인 등의 죄명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3년 동안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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