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락
金錫洛1893. 1. 16 ~ 1959.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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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93년 1월 16일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백운면(白雲面) 운교리(雲橋里)에서 태어나 평범한 농부로 생활하였다. 본관과 가족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명은 김해룡(金海龍)이다. 1919년 3·1운동을 경험하면서 일제 강점의 부당함을 인식, 독립 의지를 갖게 되었다. 1927년 10월경 전북 진안군 진안면 고림사(古林寺) 주지 이용성(李龍城)으로부터 약 3개월 동안 수학하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경문(經文)인 북두(北斗)·천수(千手)·산신(山神)을 배웠다. 1929년 4월 28일부터 진안면 단양리(丹陽里) 마이산(馬耳山) 성지동(聖池洞)과 그 일대에서 매월 1~2회 독립을 염원하는 기원제(祈願祭)를 지냈다. 1935년 12월 31일 오후 10시경 진안면 단양리 성지동에 불상 및 제단을 설치하고 창윤직(昌允直) 등 15명 내외의 인물들과 독립기원제를 거행하였다. 제단 뒤쪽에 독립기·중앙기·태극기 등의 기를 설치하고 의식을 치른 뒤 크게 “천하 팔도강천(八道江川) 회복, 독립기원 만세, 도탄에 빠진 억조창생(億兆蒼生) 구제, 독립기원 만세, 조선 삼천리강산 회복, 독립기원 만세”라고 절규하며 독립을 염원하였다. 1936년 1월 15일 오후 11시경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강가에서도 독립기원제를 거행한 후 독립 만세를 외쳤고, 같은 해 4월 8일 진안군 마령면(馬靈面) 금당리(金堂里) 내도산, 5월 28일 오후 10시경 운교리 자택, 9월 9일 오후 11시경 금당리 천왕문, 12월 20일경 오후 11시경 단양리 성지동, 1937년 2월 14일 오후 11시경 운교리 자택, 같은 해 5월 11일 오후 11시경 운교리 자택에서 독립기원제를 지냈다. 이처럼 1929부터 1937년까지 수차례 독립을 염원하는 기원제를 거행하면서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독립기원 만세를 외치며 독립의 의지를 펼치고 민족의식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붙잡혔다. 1937년 12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59년 4월 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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