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봉률

金鳳律

188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양윤숙 의진(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관련 사건

  • · 정미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1884년경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우북면(右部面) 백야치(白也峙, 혹은 栢野峙, 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白山里) 일대)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의하면 1909년 당시 18세였던 점으로 보아,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았다. 이에 더하여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키자, 해산 군인들은 의병 세력에 합류하여 정미의병을 일으켰다. 이 중 호남 지역에서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였는데, 전북 순창군에서도 양윤숙(楊允淑)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활동하였다. 양윤숙 의병부대의 후군장(後軍將)과 검찰(檢察) 역할을 한 이국찬(李國燦)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순창군 구암면(龜巖面) 일대의 회문산(回文山)에서 창의한 양윤숙 의병부대는 1,200명의 지원자 중 120명을 선발하여 편성된 정예부대로, 총기 270정으로 무장하여 우수한 전투 능력을 갖추기도 하였다. 여기에 중군장 최산흥(崔山興)이 합류하면서 500~600명의 병력으로 확대되어 순창·임실 일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9월부터 순창군 일대에서 일본 군경과 교전을 벌였고, 1909년 2월과 3월에는 순창수비대와 교전하였다. 이 무렵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이국찬의 지휘에 따라 부대원 10여 명과 총 5정을 휴대하고, 순창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다. 양윤숙 의병부대는 11월까지 순창과 임실(任實)·남원(南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제거,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1909년 9월부터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이 전개되면서 일본 군경은 순창을 주요 수색 지역으로 설정하였다. 10월 23일 순창과 임실 지역에 파견된 수색대는 변장대(變裝隊)까지 편성하여 순창군 피노리(避老里)에 주둔시켰다. 1909년 10월 26일 전주경찰서 변장수색대에 체포될 당시 화승총 1정을 소지하고 있었다. 1909년 11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재판을 받았고,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10개월여의 옥살이를 하다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