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거복
金巨福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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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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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85년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장남면(長南面) 고랑포(高浪浦) 장래정(長來井)에서 태어났다. 거주지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한 강제 군대해산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같은 해 8월 경기 장단 북면 솔랑리에 거주하던 김수민(金秀敏, 일명 金守民)이 장단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하였다. 김수민 의병부대의 의병 모집 소식을 접한 후 그해 음력 10월 김수민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김수민 의병부대에서 계속 진행한 세력 확장과 무장 능력 향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개성군(開城郡)에서 북방으로 30리 지점의 천마산성에 보관 중이던 구식대포 28문을 빼앗아 무장 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장단군 덕음동에 주둔할 때는 군용으로 충당될 양곡과 의병들의 의복을 부호들에게서 징발하였지만, 농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아 김수민 의병부대가 농민들의 지지를 받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김수민 의병장의 지휘 아래 각지에 출몰하면서 기습적인 공격으로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1907년 음력 10월 23일에는 장단 고부성(高斧城) 부근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치열한 교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김수민 의병부대는 13도창의군에 가담하여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11월에는 박종환(朴宗煥) 의병부대 등과 함께 마전(馬田), 적성(積城) 사이에 주둔하던 허위(許蔿) 의병장의 지휘를 받았다. 이는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하고 허위·이은찬(李殷瓚) 등이 중심이 되어 재편된 경기 북부 지역 연합 의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장단 지역을 중심으로 양근(楊根)·연천(漣川) 등지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주로 20명에서 30명 정도의 병력으로 유격대를 편성하여 유격전을 벌였다. 김수민 의병부대는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 헌병대에 큰 피해를 주어 일본군 헌병대의 집중적인 정탐 대상이 되었는데, 이에 크게 일조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음력 2월 장단 구야장(九夜場, 구화장(九化場)) 부근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판결 ‘융희 2년 형(刑) 제350호’에 의거 유형(流刑) 5년 형에 처하고, 소지하고 있던 한국 총 1정은 몰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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