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金復東1889. 8. 2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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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1889년 8월 24일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백학면(百鶴面) 두일리(斗日里)에서 출생하였다. 김부동(金富同)으로도 불렸다. 연천군 백학면 만세 시위는 연천군 미산면 석장리에 거주하던 조우식(趙愚植)이 기획하였다. 그는 3월 21일 백학면 두일리 장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일으키고자 계획하여, 이날 시장이 끝날 무렵 장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구금룡(具今龍)이 소방용 경종을 울리며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에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백학면 사무소로 가서 직원들에게 독립 만세를 독려하였고, 민가에 숨은 면장 윤규영(尹圭榮)도 붙잡아 와서 독립 만세를 부르도록 하였다. 계속 면민이 모여들어 200여 명에 이르렀다. 일제 헌병이 출동했지만, 군중은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백학면 사무소로 향했다. 면서기 정기만(鄭基萬)이 만세를 부르기를 거절하자, 백학면 사무소에 투석을 감행하였다. 조우식을 선두로 마전 관아 자리로 이동하며 계속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백학면 통구리(通溝里)의 시위대와 합류해서 미산면 마전리(麻田里) 헌병주재소로 갔다. 군중과 대형 태극기를 세워놓고 독립 만세를 새벽까지 외쳤다. 이어 석장리(石墻里)로 행진하려 하다가,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8일 감형으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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