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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칠

金相七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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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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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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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3년경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하북면(下北面) 고동(高洞)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26일 전북 진안(鎭安)에서 최익현의 문인 이석용(李錫庸)이 거의토적(擧義討賊)을 내세워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이석용의 거의에 뜻을 함께하여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으며, 임실과 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펼쳤다. 이석용 의병부대는 1907년 9월 13일 진안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당시 기삼연이 전라도 일대의 의병부대를 결집하여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자 의병부대를 이끌고 합류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는 기삼연을 맹주로 추대한 뒤 1907년 10월 말부터 다음해 1월 말까지 치열한 항일 전투를 벌였다. 1908년 1월 9일 동료 의병 40여 명과 함께 총 30정과 칼 1자루를 휴대하고 임실군과 남원군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본군 토벌대의 좁혀오는 포위망에 의해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0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도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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