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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익

金相釴

1876. 5. 18 ~ 19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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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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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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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76년 5월 18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상남면(上南面) 지귀리(知歸里, 현 창원시 의창구 지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운동 당시에는 경남 김해군(金海郡) 하계면(下界面) 본산리(本山里, 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창원 지역의 애국 인사들은 3월 23일 창원읍 장날에 만세 운동을 결행하기로 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고 창원보통학교(현 창원초등학교)와 창흥학교(昌興學園)의 학생 동원도 계획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3일 이른 아침부터 장꾼을 가장한 시위 군중이 모이기 시작하여, 오후 2시 30분경이 되자, 주동자들이 창원보통학교에 있는 대수정(大樹亭) 앞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만세 운동이 시작되자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국(大韓國) 독립 만세(獨立萬歲)’라고 쓴 기를 들고 ‘한국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태극기가 나눠지고 독립선언서도 뿌려졌으며, 주동 인물들은 일본 헌병을 교란하려고 동원된 창원보통학교 학생들을 분산시켜 창원읍 주위의 산에 배치하여 만세와 함성으로 응원토록 하였다. 6,000~7,000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행진하여 창원 읍내 주재소의 헌병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마산 주재 중포병대대와 진해요항부 등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였고, 급보를 받고 도착한 증원 병력은 시위 군중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주동 인물 31명을 체포하였다. 이 일로 일제에 붙잡혀 1919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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