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金相潤1896 ~ 1920. 10. 19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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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가족관계, 고향, 거주지 등은 알 수 없으나 1920년 10월 중순 경 북간도(北間島) 허룽현(和龍縣) 사무사(四茂社) 송언동(松堰洞)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 허룽현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기 이전부터 북간도의 독립운동 기지로 개척된 지역이다. 3·1운동을 계기로 북간도 여러 지역에서 그동안 축적된 독립운동 수행 역량을 결집한 독립군단들이 성립되었다. 이들 독립군단의 독립군들은 성립 직후부터 두만강을 넘어 한국 내로 진입해 유격전을 펼치면서 수많은 침략기관을 파괴하고 일제의 수괴와 친일파들을 처단하였다. 독립군의 활동에 큰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8월 북간도뿐만 아니라 압록강 대안(對岸)인 서간도(西間島) 지역에 근거지를 가진 독립군단을 공격하려고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그리고 1920년 10월 2일 중국의 마적단을 매수한 뒤 일본의 훈춘(琿春)영사관 분관을 공격하도록 해 일본측이 중국인들에게 피해를 당한 것처럼 사건을 꾸민 후 이를 구실로 대병력을 서북간도로 침입시켰다. 서북간도로 향한 일본군은 식민지 한국에 주둔한 조선군(朝鮮軍)이 중심이 되고 관동군(關東軍), 시베리아파견군, 북만주 파견대 등이 연합한 약 2만의 병력이었다. 이들 중 룽징촌과 허룽현을 향한 일본군은 조선군 소속의 육군소장 아즈마 마사히코(東正彦)가 지휘한 아즈마지대(東支隊)였다. 지대장 아즈마는 약 5,000명의 병력을 여러 개로 분산해 룽징촌과 허룽현 곳곳의 한인 마을에 침투시켰다. 명령을 받은 일본군들은 한인 마을에 들어가 민족학교·교회·곡물창고 등을 닥치는 대로 방화해 소각하였다. 그리고 눈에 띈 한인은 일본을 찬동하는 세력인지 아닌지 심문한 뒤,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칼과 창·총으로 여지없이 살해하였다. 1920년 10월 19일 허룽현 사무사 송언동에 들어온 일본군 한 부대는 마을 곳곳을 수색해 김상윤을 비롯해 김상일(金相逸)·김칠형(金七亨)·임학상(林學相)·지용방(池龍芳)·김상원(金相元)·박용훈(朴龍勳) 등 모두 8명을 찾아냈다. 이들과 함께 끌려가는 과정에서는 물론 일본군 부대 앞에 도착한 뒤에도 강하게 저항하며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다 총에 맞아 전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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