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련
金炳鍊186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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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65년경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양사면(暘社面) 신풍동(新豊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주소지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함북 길주는 천도교주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의 신임을 받는 함북 천도교의 중심인물인 창원포(昌源布) 주관도정(主管道正) 김용수(金龍洙)가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또한 함경북도에서 천도교가 가장 먼저 포교되어 교세가 강하였다. 1919년 3월 초 측근인 박용한(朴庸漢)이 서울 천도교 중앙총부로부터 만세 시위에 대한 지시를 받고 귀향하였다. 이에 김용수는 길주 지역의 천도교 중심 인물들과 회합하여, 길성면(吉城面, 이후 길주읍) 장날인 3월 12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2일 만세 시위는 길주군의 만세 시위를 촉발하였다. 13일 덕산면(德山面) 일신동(日新洞), 14일 동해면(東海面) 용원동(龍源洞), 15일 웅평면 시위 등 주로 길주군의 남북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15일 이후는 북부 지역인 양사면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되었다. 3월 15일 양사면의 북부인 양흥동(暘興洞)에서 300여 명이 회집하여, 합수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6일 오후 2시경 양사면의 남부인 신풍동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장남인 김주봉(金周鳳)·김명철(金明哲) 등과 함께 100여 명이 회집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재덕헌병분견소(載德憲兵分遣所) 헌병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며 김주봉을 체포해 분견소로 끌고 갔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재덕헌병분견소 앞으로 행진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다시 ‘자신들의 행위는 한국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으로서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8월 21일 고등법원형사부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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