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천
金洛天188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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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880년경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 산막리(山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40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황해도 평산군의 3·1운동은 손병희(孫秉熙)의 지시를 받은 이동락(李東洛)의 주도로 3월 7일 평산읍 장터에서 시작되었다. 헌병들이 시위대에 발포하며 강제해산시키면서 한동안 만세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3월 30일 은담리(隱潭里)·빙고리(氷庫里) 등에 독립 만세의 전단이 나붙었고, 31일에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만세 시위가 크게 벌어졌다. 이후 세곡면(細谷面) 누천리(漏川里), 문무면(文武面) 문구리(文區里)을 비롯하여 남천(南川)·두무(斗武)·물개(物開) 등지로 만세 운동이 퍼져나갔다. 4월 7일이 되자 보산면(寶山面) 운천리(雲川里) 모래사장에서도 주민 300여 명이 참여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천리 만세 운동에 다른 지역민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남천 헌병분견소에서는 헌병과 헌병보조원을 보내 주모자를 수색하고 지역민들의 참여 여부를 조사하였다. 8일 운천리에서 가까운 산막리(山幕里)에도 헌병과 헌병보조원 3명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주민들의 참여 여부를 조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헌병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죄가 있다며 총으로 위협하면서 주민들에게 이후에도 대한 독립을 외치겠느냐고 물었다. 주민들과 함께 대한 독립을 외치겠다고 대답하자 헌병이 총을 발사하여 조백선(趙伯善)이 사망하였고, 2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때 팔 상부에 총상을 입고 연행되었다. 1919년 7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상해, 살인미수 혐의 항소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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